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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미온느는 말포이에게 첫 키스를 빼앗긴 슬픔을 곱씹으며 한 시간 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틀 동안 그가 저지른 짓에 분노하고, 두 시간 동안 복수할 방법을 궁리했다.
결국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는 게 최고의 복수라는 결론을 내렸다. 말포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무시당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병원 문을 2주 동안 닫고 헤르미온느를 데리고 프랑스 남부로 휴가를 갔다. 헤르미온느는 대부분의 시간을 파라솔 아래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고, 덕분에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떠나기 전처럼 창백했다. 4학년 교과 과정을 모두 예습하고, O.W.L. 시험 대비 학습 계획을 세웠으며, 스네이프 교수가 마지못해 'O'라고 적어 준 마법의 약 에세이를 액자에 넣었다. 에세이는 그녀의 어린 시절 침실에 있는 책상 위에 걸렸다. 단순하고 현대적인 인테리어 사이에서 양피지 액자는 조금 어색해 보였다.
헤르미온느는 여름방학 마지막 2주를 버로우에서 보내기로 했다. 부모님과 헤어질 때는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마법을 쓰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기에 머글 세계를 벗어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더 컸다. 버로우에 도착하자마자 론이 숨 막힐 정도로 꽉 껴안아 주었고, 헤르미온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세드릭은 키가 크고 잘생겼으며, 편안한 미소와 매력적인 성격을 지닌 소년이었다. 지니의 뺨에도 홍조가 오른 것을 보니, 연상의 후플푸프의 매력에 푹 빠진 건 헤르미온느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퀴디치에는 여전히 관심이 없었지만, 주변 팬들의 열정과 행사의 웅장함에 전염되었다. 팀도 선수도 몰랐지만, 경기장이 서서히 관중으로 가득 차는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때, 비웃는 듯한 거만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아서 위즐리 옆에 루시우스 말포이가 혐오감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우아한 로브를 입은 아름답고 날씬한 여자가 있었다. 루시우스 말포이와 마찬가지로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의 얼굴은 묘하게 설치류를 닮았고, 왠지 모르게 낯익었다.
드레이코 말포이는 제 아버지가 장난스러운 농담을 가장해 노골적인 모욕을 퍼붓는 모습을 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치 루시우스 말포이의 축소판 같았다. 헤르미온느는 그가 여름 동안 론처럼 키가 훌쩍 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실망했다.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자신을 작아 보이게 하려는 론과 달리, 말포이는 자라난 몸이 편안한 듯 허리를 곧게 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헤르미온느와 마주쳤다. 그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번졌고, 헤르미온느는 분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여름 내내 잊고 있었던, 그와의 키스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고, 그의 입술이 닿았던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그의 혀가 스쳤을 때의 전율, 그리고 빨라지던 심장 박동까지.
그를 무시하려던 결심이 무너졌다. 다행히 아서를 조롱하는 데 지친 루시우스가 가족들을 데리고 자리를 뜨는 바람에, 장관과 위젠가모트 의원 절반 앞에서 말포이에게 저주를 퍼붓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떨리는 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역사상 최연소 마법 정부 장관이 되겠다는 계획은 말포이 가문의 후계자를 영구히 불구로 만들어 버리면 물거품이 될 테니까.
헤르미온느는 말포이 쪽을 우연히 볼 때마다 지팡이를 겨누고 싶은 충동으로 손가락이 가려웠지만, 간신히 억눌렀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거만한 웃음이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다.
퀴디치 월드컵에서 말포이의 행동을 보니, 새 학기가 시작되면 그 비열한 조롱이 다시 시작될까 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곧 괜한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물론, 다가온 시험, 온갖 위험으로 가득 찬 학교, 살인광 학살자의 귀환 가능성, 그리고 마법약 수업에서 또 'O'를 주지 않으려는 스네이프 교수의 굳은 결의 같은 사소한 문제들은 여전히 걱정거리였지만 말이다.
설령 말포이가 그녀를 괴롭힐 계획이 있었다 하더라도, 덤스트랭과 보바통 학생들의 등장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관심을 충분히 돌려놓은 듯했다. 어떤 학생들은 옅은 푸른빛 교복이 여학생들의 가는 허리를 더욱 강조하는 모습에 매료되었고, 어떤 학생들은 팬들에게 둘러싸여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세계적인 수준의 수색꾼에게 사인을 받으려고 애썼다. 호그와트는 새로운 활기로 가득했다.
헤르미온느의 관심은 새로 온 학생들보다는 그들의 학교에 집중되었다. 덤스트랭은 비밀의 장막에 싸여 있었고, 보바통에 대해 읽었던 내용들은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너무 환상적이고 유치해서 사실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ㅡ 님프들이 학생들이 식사하는 동안 세레나데를 불러준다고? 정말?
게다가 트라이위저드 시합의 역사를 공부하느라 말포이를 생각할 틈도 없었다. 교환학생들이 많아 슬리데린 학생들과 수업을 함께 듣지 않게 된 것도 그를 잊는 데 한몫했다. 멀리서 우연히 말포이를 마주칠 때면 그는 대개 친구들과 이야기하거나, 팬시 파킨슨의 질투 어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쁜 보바통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해리의 이름을 불의 잔에 넣었고, 교수들 사이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헤르미온느는 걱정으로 속이 타들어 갔고, 해리와 론 사이에는 깊은 골이 생겼다.
헤르미온느는 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착하지만 창의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해리가 덤블도어의 방어막을 뚫을 방법을 알아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론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이해했다.
론이 해리의 그림자 속에서 늘 비교되고 무시당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그저 해리의 친구로만 알려지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었다. 론은 평생 퀴디치를 꿈꿔왔지만, 퀴디치가 뭔지도 모르는 해리가 1학년 때 수색꾼이 되었다. 지니를 구하려고 함께 싸웠지만, 바실리스크를 죽인 해리만 칭찬받았다. 론은 마법 생물 돌보기 수업을 진심으로 기대했지만, 히포그리프를 탄 것은 그 수업에 전혀 관심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던 해리였다. 불의 잔에 자신의 이름을 넣고 싶어 안달이 났던 론은 나이 제한 규칙 때문에 포기해야 했지만, 그 모든 규칙은 해리를 챔피언으로 만들기 위해 무시되는 것처럼 보였다.
헤르미온느는 이전의 챔피언들이 팔다리를 잃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는 끔찍한 이야기에 밤잠을 설쳤다. 동시에 사이가 틀어진 두 친구 사이를 중재하며, 어느 쪽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애써야 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마침내 론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해리와 화해할 방법을 찾는 것 같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빌어먹을 리타 스키터가 론에 대한 끔찍한 기사를 써낸 것이다.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말포이는 헤르미온느를 보며 의뭉스럽게 빈정거렸다.
다시 한번 그를 때려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지만, 무디 교수가 말포이를 족제비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말포이가 지팡이를 꺼내 해리를 위협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설치류를 닮은 말포이가 하필 흰족제비로 변했다는 아이러니에 통쾌함과 함께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나중에 파드마 파틸에게서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헤르미온느는 말포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혐오했다. 하지만 무디가 그를 단순히 변신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돌바닥에 내동댕이쳐서 온몸의 뼈가 부러져 병동에 실려 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속이 메스꺼웠다. 맥고나걸 교수가 막지 않았더라면 무디는 계속해서 말포이를 괴롭혔을 것이다.
말포이든 아니든, 헤르미온느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었다. 특히 학생들을 돌봐야 할 교수라면 더욱 그랬다. 학생들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직접 시전해 가르치겠다는 무디의 생각에 처음부터 의아했지만, 이 사건으로 그는 트릴로니를 제치고 헤르미온느가 가장 싫어하는 교수 1위에 등극했다.
며칠 후, 팔에 붕대를 감고 여전히 부어오른 얼굴에 멍 자국이 남아있는 말포이를 보았을 때, 헤르미온느는 키스 이후 처음으로 분노가 아닌 연민을 느꼈다. 그가 무시보다 연민을 더 싫어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해리와 론은 화해했다. 헤르미온느는 크게 안도했지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론은 종종 욱하는 성격이었지만, 의리가 깊은 진정한 친구였다.하지만 진정한 친구든 아니든, 그는 가끔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삼총사가 드디어 다시 뭉쳤고, 더 이상 중재자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은 크리스마스 무도회 발표 후 일주일 만에 산산이 조각났다.
론을 향한 작지만 끈질긴 짝사랑은 사라질 줄 몰랐고, 헤르미온느는 론이 자신을 무도회 파트너로 초대해 주길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아니,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녀가 들은 것은 론과 해리가 어떤 여자아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지 고민하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들은 헤르미온느를 여자로조차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부스스한 머리, 잉크 얼룩투성이 손가락, 그리고 항상 책 뒤에 숨어 지내는 자신이 전형적인 미인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존심이 상했다.
너무 속상한 나머지, 빅토르 크룸이 붉어진 얼굴로 나타나 짙은 불가리아 억양으로 무도회 파트너가 되어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헤르미온느는 어안이 벙벙해서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범생이에 잘난 척쟁이인 자신에게, 팬들에게 둘러싸인 세계적인 수색꾼이자 트라이위저드 챔피언의 파트너가 되어 달라니.
헤르미온느가 너무 오랫동안 멍하니 있자, 크룸는 넓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상처 입은 짐승처럼 물러서려 했다. 헤르미온느는 그가 도망가지 못하게 얼른 그의 팔을 붙잡고 승낙했다. 그의 따뜻한 미소에 헤르미온느의 가슴은 두근거렸고, 얼굴에는 바보 같은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그 행복은 론이 머뭇거리며 입을 여는 순간 사라졌다.
"헤르미온느, 너도 여자였잖아…"
해리가 뒤에서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입을 막으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론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내뱉었고, 헤르미온느는 무엇 때문에 더 화가 났는지 모른채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론이 지금까지 자신을 여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인지, 누구도 자신을 초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한 그의 동정 어린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아닌 다른 학생이 소란을 피웠는데도 스네이프 교수에게 혼이 난 것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헤르미온느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약간의 환경 오염을 일으킬 정도로 많은 양의 윤기나는 머리 마법약을 바르고, 라벤더의 잡지에서 찾은 몇 가지 새로운 화장 마법을 사용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분명히 자신이었지만, 더… 성숙해 보였다. 더 이상 공부벌레 꼬마 여자아이가 아니라, 어른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젊은 여성이 서 있었다. 편안하면서도 자신다운 모습에 만족하며, 간단한 머리 손질과 화장 마법에 대한 책을 몇 권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헤르미온느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받아들였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녀가 누군지 알아보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듯했다. 아마도 그녀가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빅토르 크룸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따뜻하고 친절한 눈빛으로 미소지었다. 축제 의상을 입은 그의 모습은 멋졌고, 그의 인사에 헤르미온느는 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넌 정말 아름다워."
그가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항상 아름다웠지만."
부모님 외에는 아무도 그녀를 아름답다고 불러준 적이 없었다. 책벌레 같은 자신의 모습까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빅토르 덕분에 헤르미온느는 자신감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자신에게 이런 자신감이 필요했는지도 몰랐다.
그는 그녀가 생각했던 대로 매너 있는 신사였다. 의자를 빼 주고, 춤을 출 때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의 손은 절대 너무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음악과 웃음으로 가득한 멋진 저녁을 보내던 중, 빅토르는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키스하며 마실 것을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여전히 멋진 분위기에 들떠 있던 헤르미온느는 구석에 앉아 있는 해리와 론에게 다가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의 우울한 분위기를 눈치챘어야 했다.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어야 했지만, 론이 그녀가 적과 “어울리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인내심이 바닥났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는 황급히 대연회장을 나와 인적이 드문 안뜰로 향했다. 빈 마차 뒤에 숨어 얼굴을 가렸다.
"론 위즐리 때문에 울지 않을 거야."
헤르미온느는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며 스스로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옆 마차에서 수상한 인기척이 들렸다.
"믿을 수가 없군. 그 머드블러드가 빅토르 크룸과 데이트를 하다니. 마법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존경받을 기회를 얻었으면서, 혼자 울고 있잖아? 그것도 겨우 위즐리 때문에?"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론의 반응 때문에 느꼈던 쓰라린 아픔이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었다.
헤르미온느는 분노에 차 고개를 돌렸다. 말포이가 근처 마차에 기대어 서, 플라스크처럼 보이는 물건이 들고 있었다.
"입 닥쳐, 말포이."
헤르미온느가 낮게 쏘아붙였지만, 그는 재밌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싫은데."
그는 고급스러운 로브의 깃을 정리하며 말했다.
"재밌는 구경거리를 놓칠 순 없지."
"네 파트너는 재미없나 봐?"
헤르미온느는 비꼬았다. 말포이가 팬시 파킨슨을 파트너로 초대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헤르미온느는 소문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기숙사 친구들이 말포이와 파킨슨이 사귀는지, 아니면 부모끼리 정략결혼을 약속한 건지 궁금해하는 것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고리타분한 약혼 계약에 묶여 있다면, 파킨슨이 그 촌스러운 머리띠를 하고 온 것도 이해가 됐다. 말포이 가문은 마법 세계의 왕족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내 파트너는 네 알 바 아니야, 머드블러드."
말포이는 헤르미온느의 노려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플라스크 뚜껑을 열어 입에 댔다.
"내 파트너도 네 알 바 아니거든? 그러니까 입 닥치고 네 뾰족한 코나 신경 써, 흰족제비."
헤르미온느가 쏘아붙였다. 말포이의 얼굴에 스치는 그림자를 보고 죄책감을 느꼈지만, 흰족제비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고 미안해할 생각은 없었다. 사과는 더더욱 할 생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네 연애사에 간섭하는 게 싫으면, 온갖 가십지에 네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니지 말았어야지. 수업 시간에 네가 얼마나 관심받고 싶어 하는지는 알지만, 그렇게까지 할 줄이야…"
그는 혀를 찼다.
"너ㅡ"
헤르미온느는 분노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욕설을 퍼붓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워, 워, 머드블러드. 흥분하지 마. 지난번엔 봐줬지만, 또 날 때리면 가만 안 둘 거야. 내가 네 적이 되는 건 원치 않을 텐데."
말포이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 적이라고? 우리가 적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헤르미온느는 비꼬았다.
"남한테 욕하고 이빨을 자라게 하는 저주를 거는 게 슬리데린식 우정 표현이야?"
말포이는 경멸하듯 코웃음을 치고 마차에서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넌 내게 하찮고 귀찮은 존재일 뿐이야. 내가 널 참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머드블러드. 너랑 포터, 그리고 옆에 끼고 다니는 그 멍청한 녀석까지."
이 오만하고 무식하고 멍청한ㅡ
헤르미온느의 생각이 멈췄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적과 어울린다고?
그녀의 얼굴에 결의가 드러났는지, 말포이가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의 손을 흘끗 보았다. 또 주먹을 날릴까 봐 경계하는 듯했지만, 헤르미온느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재빨리 말포이의 로브 깃을 잡아당겨 그를 끌어당겼다. 발끝으로 서야 겨우 그의 키에 맞출 수 있었지만,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머릿속이 다시 하얘졌다.
나중에야 이 키스가 말포이에게 빼앗긴 두 번째 첫 키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헤르미온느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오직 그의 입술이 닿는 감촉만이 중요했다.
각도가 맞지 않았고, 그의 뾰족한 코가 거슬렸으며, 키스하려면 고개를 뒤로 젖혀야 했지만, 헤르미온느는 개의치 않았다.
말포이는 잠시 얼어붙었다. 그녀의 돌발 행동에 놀란 듯했지만, 곧 반응했다. 고개를 살짝 기울여 능숙하게 입술을 맞추고는, 그녀가 균형을 잃지 않도록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가 들고 있던 플라스크가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자신의 몸에 밀착시키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등이 차가운 마차에 닿았다. 그는 더 가까이 다가왔고, 세상에 오직 그와 자신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입술이 닿는 간질거리는 감촉, 그의 몸에서 전해지는 온기, 허리에서 갈비뼈로 천천히 올라오는 그의 손, 그리고 그녀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실크와 따뜻한 향신료, 그리고 풋사과 향.
이번에는 헤르미온느가 먼저 입술을 열었다. 그의 혀가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오자, 그의 로브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입술에서는 달콤한 펀치와 플라스크 속 알코올 뒤섞여 이국적인 향이 났다. 더 원하게 되는 맛이었다.
말포이가 숨을 고르기 위해 입술을 떼자, 헤르미온느는 그의 어깨와 목을 끌어안고 다시 키스했다. 그의 금발 머리카락은 보기보다 부드러웠고, 살짝 잡아당기자 그가 낮게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따라 내려가 허리를 감싸고, 다른 손은 그녀의 옆구리를 타고 올라와 가슴의 굴곡을 머뭇거리며 어루만졌다. 말포이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따뜻한 손바닥으로 그녀의 오른쪽 가슴을 감싸 쥐었다. 그의 목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헤르미온느는 놀라서 숨을 들이켰지만, 말포이는 그녀가 저항할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입술을 덮쳤다.
사실 저항할 생각도 없었다. 그 순간 헤르미온느는 오직 더 많은 것을 원했다. 더 많은 키스, 더 많은 손길, 더 많은… 그를. 나중에 침대에 누워 얼굴을 붉히며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패트리피쿠스 토탈루스!"라는 주문과 함께 스네이프 교수가 마차 안에 숨어있던 두 학생을 꾸짖으며 각각 10점씩 감점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어디까지 갔을까?
헤르미온느는 말포이에게서 떨어졌다. 말포이는 그녀의 비명을 막으려고 재빨리 입을 막고는 위협적으로 노려보았다. 마치 스네이프 교수에게 그들이 함께 있는 장면을 들키고 싶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조용히 해!"
그는 입 모양으로 말했다. 헤르미온느가 놀라 숨을 들이키는 것도 무시한 채, 마차 사이로 스네이프가 오는지 살피느라 바빴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뺨이 붉어진 것이 보였고, 그의 맥박이 뛰는 것도 느껴질 만큼 가까웠다. 그의 심장도 자신처럼 빨리 뛰고 있을까? 아니, 아니. 그저 자극에 대한 육체적인 반응일 뿐이다.
'말포이와는 아무 상관 없어. 누구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헤르미온느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말포이가 주변을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 손을 떼고 한 걸음 물러나 적당한 거리를 두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녀처럼 여전히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고, 그의 시선은 그녀의 드레스 네크라인에 머물렀다. 헤르미온느는 그가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그녀가 날카롭게 말했다. 말포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런 일을 자랑하고 다닐 것 같아, 머드블러드?"
그는 비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플라스크를 주웠다.
헤르미온느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눈을 굴리고는, 발걸음을 돌려 성으로 향했다. 따뜻한 공기가 그녀를 감싸자 몸이 떨렸다. 살갗에 돋은 소름은 기온 차 때문이라고, 말포이의 손길 때문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아직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헤르미온느는 갑자기 옆에 나타난 빅토르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펀치 한 잔을 건넸다. 헤르미온느는 말포이가 자신에게 흔적이라도 남긴 것처럼 빅토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챌까 봐 걱정했지만,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춤을 추자며 그녀를 붐비는 무대로 이끌었다.
헤르미온느는 그와의 만남을, 그가 자신에게 키스했던 기억처럼 억지로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려 애썼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빅토르는 그녀를 대연회장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는 넓은 손으로 부드럽게 그녀의 턱을 감싸 쥐었고, 그의 눈빛은 따스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며 그녀가 거부할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키스했다.
달콤한 키스였다. 살짝 벌어진 입술, 허리를 단단히 감싼 손…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대신,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의 입술 모양이 이상했고, 어깨는 너무 넓었고, 몸은 너무 컸다. 그는 너무 다정하고, 너무 착했고… 그리고 그의 냄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무와 연기, 민트, 그리고 어딘가 어두운 향기…
그녀는 실크와 따뜻한 향신료, 그리고 풋사과 향을 원했다.
하지만 키스가 끝나자 헤르미온느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고, 빅토르도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키스하는 대신 그녀를 이끌고 춤추는 사람들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헤르미온느는 그에게서 다시 키스받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넌 나를 떠올리게 될 거야.’
몇 달 전 말포이가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그가 옳았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늘 밤 그와의 키스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 시간 후, 헤르미온느는 대연회장 입구에서 론과 심하게 다투고 있었다. 말포이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고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차에, 론이 그녀에게 괜히 심술을 부리자 헤르미온느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론은 화가 나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해리는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그를 따라갔다. 헤르미온느는 불쾌한 기분을 억누르려 애썼다. 다시 울고 싶지 않았다. 오늘 밤은 안 된다. 한 번이면 충분했다. 특히 지난번처럼 그 일이 또 다른 일로 이어진다면.
그때, 눈가에 익숙한 금발 머리가 스쳤다. 고개를 돌리자 거의 비어 있는 무도회장에서 말포이가 눈에 띄었다. 음악은 잔잔한 선율로 바뀌었고, 몇몇 커플만이 대연회장에서 느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는 팬시 파킨슨을 안고 있었다. 파킨슨은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잠시 동안, 헤르미온느는 그녀가 미웠다.
자신의 밤도 그렇게 끝나길 바랐다. 빅토르의 품에 안겨 느린 춤을 추며 편안하고 행복하고, 어쩌면 사랑에 빠진 기분을 느끼기를. 그러나 현실은 최악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와 싸웠고, 파트너의 키스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으며, 머릿속에서는 말포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말포이는 헤르미온느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둘은 잠시 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고, 그 표정은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그때, 파킨슨이 무언가 말했고, 그는 시선을 돌렸다.
헤르미온느는 발걸음을 돌려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향했다. 론과 또 한바탕 싸우기 전까지는 눈물을 참아야 했다.
헤르미온느는 론과 화해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끔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긴 했지만, 론은 진심으로 노력했다. 부끄러운 미소와 진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허니듀크 과자를 한 봉지 건네주었다. 헤르미온느는 속 좁게 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고, 대신 그 에너지를 해리를 돕는 데 쏟았다. 해리는 아직도 그 이상한 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빅토르와 계속 만났지만, 데이트라고 부르기는 망설여졌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분명 데이트였지만 말이다. 함께 호그스미드에 가고, 키스하고, 포옹하고, 어디를 가든 그의 팔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그는 도서관에서도 그녀의 곁을 지켰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숙제를 하기도 하고, 대부분은 그녀가 공부하는 모습을 감탄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론은 빅토르와의 관계를 억지로 참아내는 듯했고, 헤르미온느는 그런 그에게 고마웠다. 특히 두 번째 시합 전날 저녁, 덤블도어 교수의 방에 불려 갔을 때, 교장 선생님이 빅토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헤르미온느일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말했는데도 론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을 뿐이었다.
그동안 헤르미온느는 말포이를 거의 보지 못했고, 멀리서 본 적이 있더라도 그는 금발의 보바통 마녀와 이야기하느라 바빠 그녀를 알아채지 못했다. 라벤더의 말에 따르면, 말포이와 파킨슨은 "권태기"를 겪고 있고, 그 금발 마녀는 중요한 정치인의 외동딸이자 프랑스 순수혈통 가문의 상속녀인 마르고 기욤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유명 디자이너라고 한다. 둘은 꽤 잘 어울려 보였다. 말포이의 키스에 작게 신음하는 마르고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헤르미온느는 알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헤르미온느는 그 감정을 깊이 파헤치지 않기로 했다. 말포이와의 일은 실수였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거리를 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가 프랑스 여자와 사귀든 말든, 그녀가 상관할 바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빅토르가 있었다. 다정하고 상냥한 빅토르. 그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흥미로운 마법을 썼고, 헤르미온느는 그 마법을 배우고 싶어 안달이었다. 비록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론과 플뢰르의 여동생을 구출한 해리가 2등을 한 것에 대해서도, 빅토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덤스트랭 친구들과 교장이 심판들에게 항의하는 동안, 그는 스포츠맨십을 발휘하며 해리와 악수했다. 차가운 호수 물에 흠뻑 젖은 헤르미온느가 얼어 죽지 않도록 수건 세 장으로 감싸고 새 로브를 가져오게 한 것도 빅토르였다. 그 자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헤르미온느는 빅토르를 굉장히 좋아했지만, 연애 감정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해리와 론 뒤를 따라가며 헤르미온느는 빅토르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들의 관계에 미래가 없다는 것은 서로가 알고 있었다.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닌다는 것도 문제였고, 나이 차이와 인생 계획도 달랐다. 빅토르는 이미 자신의 길을 찾았고, 헤르미온느는 마법부에서 일할 계획을 세웠기에 영국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지금의 관계는 좋았고, 헤르미온느는 그들 사이의 좋은 감정이 플라토닉한 관계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숲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긴 헤르미온느는 자신이 거의 마지막으로 뒤쳐졌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에 정신을 차리자, 프레드와 조지가 몇몇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헤르미온느는 걸음을 재촉하며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온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뼛속까지 스며든 한기를 몰아내고 싶었다.
몇 걸음 채 가지 못해,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 지나가던 커다란 나무 뒤로 끌어당겼다. 울퉁불퉁하고 거친 나무껍질이 등에 닿았고, 따뜻한 손이 그녀의 턱을 감싸 쥐었다.
"뭐ㅡ"
익숙한 눈과 마주치자, 그녀의 목소리는 끊어졌다. 그의 눈동자는 언제나 이렇게 매혹적인 은빛이었던가?
"말포이? 지금 뭐 하는 거야?"
헤르미온느는 당황하고 화가 나서 물었다.
어떻게 감히 그녀를 함부로 끌고 올 수 있지? 그것도 숲속에서? 나무에 밀치기까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ㅡ
키스할 수 있지?
그는 그녀에게 키스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과는 달랐다. 혀를 얽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았다. 그저… 절박했다. 마치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를 갈구하듯, 그는 몇 번이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손가락은 그녀의 차가운 뺨과 축축한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말포이ㅡ"
그의 입술이 다시 그녀의 입을 막았다.
"닥쳐, 그레인저."
말포이가 화난 듯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항의는 그의 입술에 삼켜졌다.
이미 두 번이나 했는데, 한 번 더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절대 안 돼! 정말 끔찍한 생각이야! 말포이잖아! 이 일을 빌미로 널 괴롭힐 거야! 이 비열하고 사악한 뱀 같은 놈은 분명 널 이용할 거라고!'
머릿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외쳤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어깨에 두른 수건을 더욱 꽉 움켜쥐고 그의 키스에 몸을 맡겼다. 그의 손길에 정신이 아득해졌고,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무와 그 사이에 갇혀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것 같았다.
또 한 번의 키스, 그리고 또 한 번…
갑자기 그가 입술을 떼어냈지만, 물러나지 않았다.
말포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기댔다. 눈을 감고 이를 악문 그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그가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날카로운 얼굴에는 온갖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두려움, 걱정, 안도감, 좌절감… 그리고 혼란스러움. 하지만 그는 말포이였다. 그가 자신을 걱정할 리 없었다.
잠시 후, 그의 눈이 다시 뜨였다. 전보다 조금 차분해진 눈빛이었다.
"한 마디도 하지 마."
그가 화난 목소리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헤르미온느는 아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말한다면, 질문들이 쏟아질 테고, 난생처음으로 그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말포이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키스했을 때 그의 의도는 분명했고, 무도회장에서의 키스는 재미 삼아, 혹은 술기운에 한 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말포이 역시 자신처럼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직감했다.
말포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섰다. 그는 잠시 그녀를 노려보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헤르미온느는 그의 행동에 어리둥절해하며 그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론과 해리가 그녀를 찾고 있었다. 그녀가 아직 성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찾아 나선 것이다. 헤르미온느는 월요일까지 제출해야 할 산술점 에세이 구조를 다시 짜느라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둘러댔고, 그들은 쉽게 믿었다. 호수에서 막 나왔으니 오늘은 쉬어도 된다고 다정하게 말해주기까지 했다.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산술점이 아니었다. 숫자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 드레이코 말포이의 속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 보였다.
세드릭 디고리가 죽었다. 해리는 볼드모트 경과의 만남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빅토르는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린 무디 교수, 실상은 악명 높은 죽음을 먹는 자인 바티 크라우치 주니어에게 저주를 맞았다.
호그와트는 학생의 죽음을 애도했고, 학기 말의 분위기는 더욱 침울해졌다. 덤스트랭과 보바통 학생들은 떠날 채비를 했고, 한 해 동안 쌓아 올린 끈끈한 우정은 눈물 어린 작별 인사로 마무리되었다.
빅토르는 친구들에게 이끌려 떠나기 전, 헤르미온느의 손가락에 입맞추고 편지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라벤더는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해 본 적도 없는 야넥이 떠난다는 사실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고, 론은 플뢰르가 쾌활하게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포이가 마르고 기욤의 뺨에 가볍게 키스만 하고 헤어졌다는 사실은, 헤르미온느만 알아챈 사소한 일이었다. 그리고 곧 잊어버렸다. 그녀에게는 협박해야 할 딱정벌레가 있었으니까.
숲속에서 그가 그녀를 머드블러드 대신 그레인저라고 불렀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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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쇼
내 취향 영픽 자급자족 번역.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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